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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태사공>옥천공휘장훈행장(玉川公諱丈勳行狀)
玉川公諱丈勳行狀 公諱丈勳字順宗玉川趙氏以高麗光祿大夫門下侍中諱璋爲始祖再傳諱璵金紫光祿大夫太師特進上柱國檢校同平章事國朝有諱淵 太宗朝文科吏曹判書生諱膺號伴鷗亭世宗朝文科議政府舍人世祖乙亥辭官南歸搆亭于雲水湖浦與當時諸賢多有唱和生諱得才號敦睦齋官習讀以孝友著再傳而諱瑀亦以文章行義見稱贈司憲府持平曰永得曰漢俊曰偵旭號竹圃曰秉圭古曾祖若考也南平文氏江城君益漸后景熙女陽城李氏文簡公承召后命華女前浚妣公季氏出以庚申五月十日生天性仁和自幼勤止異凡德器夙成有春風底氣像外柔内剛或被人之謗小不勤色反善諭之言語由德人皆悦服以里民請願任里長之責分明公私處事必正得信賴而經二十餘星霜之中兼農協及烟草耕作組合山林組合之長惟爲里民生活之改善先拓農路且設電線紗巖里雖面内交通最惡之地居人本多悶其學生往來之遠創設育成會極力周旋分建紗岩國交以便兒童之學復擴大里路通行定期車而便中高生之學居民產業之利稱頌藉藉國有文敎内務兩長官及農協中央會長之褒賞校建頌德之碑大者如此則小者可略也丁巳冬偶羅感崇意以戊午六月二十四日得年六十三而終鄉里嗟惜輓誄連道葬于紗岩里栗峙下路邊酉坐之原配金海金氏于丁卯正月十三日擧四男一女男長成翼次璟翼漢翼前配出君翼女適 崔福男孫男啓烘容洵長房出鎔洙次房出夫人生柞世所幸之蹟雖有大少之殊其道則一也公以眞實誠勤之姿先公浚私意成一坊來世之安業昏衢之明燭其斯之謂歟之胤漢翼亦謹勅趾美抱家狀同其再堂兄孟翼善翼甫遠訪要公狀行余辭以非手而其請尤切不得固辭畧加潤刪撰次如右 歲壬戌溽曙節 首陽 呉炳根 撰 옥천공휘장훈행장(玉川公諱丈勳行狀) 공의 휘(諱)는 자훈(丈勳)이요. 자(字)는 순종(順宗)이니 옥천씨(玉川氏)라 고려광록대부(高麗光祿大夫) 문하시중(門下侍中) 휘(諱) 장(璋)은 시조(始祖)라 두번 전하여(再傳) 휘(諱) 여(璵) 금자광록대부태사 특진 상주국검교동평장사(金紫光祿大夫太師 特進 上柱國檢校同平章事)요. 국조(國朝)에 와서 휘(諱) 연(淵)은 태종조(太宗朝)에 문과(文科) 이조판서(吏曹判書)요 휘(諱) 응(應)은 호(號)가 반구정(伴鷗亭)이며 세종조(世宗朝)에 문과의정부사인(文科議政府舍人)이라 세조(世祖) 을해(乙亥年)에 벼슬을 버리고 남으로 돌아와서 한 정자(亭子)를 임실(任實) 호포(湖浦)에 세우고 당시 여러 현인(賢人)들과 더불어 시로서 화답한 것이 많다. 휘(諱) 득재(得才)는 호(號)가 돈목재(敦睦齋)이시며 벼슬은 습독(習讀)이라 효도(孝道)와 우애(友愛)로서 이름이 나타나 다 두번 절하여 휘(諱) 우(瑀)는 또한 문장(文章)과 행의(行義)로서 명망이 높으셨으며 증사헌부지평(贈司憲府持平)이라 가로되 영득(瑛得) 왈(曰) 한준(漢俊) 왈(曰) 정욱(貞旭) 호(號)에 죽포(竹圃) 왈(曰) 병규(秉圭)는 곧 공의 고조(高祖)이시고 증조(曾祖)이며 할아버지와 아버지이시다. 남평문씨(南平文氏) 강성군(江城君) 익점(益漸)의 후손 경희(景熙)의 딸과 양성이씨(陽城李氏) 문간공(文簡公) 승소(承召)의 후손 명화(命華)의 딸은 전후(前後) 어머니라 공은 이씨가 경신오월십일(庚申五月十日)에 생(生)하니 천성(天性)이 어질고 화평하며 어릴때부터 움직이고 그침이 범상치 않아 덕기(德器)가 일찍이 이루어지니 봄바람같은 기상(氣象)이였으며 외면(外面)은 유(柔)하고 내면(内面)은 강(剛)하니 혹(或) 남의 비방을 듣더라도 조금도 변색함이 없이 오히려 좋은말로 깨우치니 말이 덕(德)이 있으므로 사람이 다 즐겨 복종하더라 마을 사람들의 원(願)에 의해서 이장(里長) 책임을 맡으니 공사(公私)에 분명(分明)하고 매사에 정직(正直)을 위주(爲主)로 하여 농협장(農協長) 연초경작조합장(煙草耕作組合長) 산림조합장(山林組合長)등을 二十여년 역임중에 도로개척(道路開拓) 전기시설(電氣施設) 국교(國校) 유치(誘致) 통학차노선개통(通學車路線開通) 주민의 생활개선(住民生活改善)등 다방면(多方面)으로 편리(便利)를 봉사적(奉仕的)으로 돌보아주니 칭송(稱頌)이 자자하더라. 이와같이 함으로 문교내무(文敎内務) 양장관(兩長官)과 농협중앙회장(農協中央會長) 도지사(道知事) 군수(郡守) 경찰서장(警察署長)등 헤아릴 수 없는 표창장(表彰狀)이며 주민이 송덕(頌德)하여 비(碑)를 세우니 공의 평장사업이며 그 인자한 심사를 가히 알겠도다. 슬프다 무오(戊午) 六月 二十四日로서 고종(考終)하니 향년(享年) 六十三이라 사암리 율치하노변(栗峙下路邊) 유좌원(酉坐原)에 장매하니 주민남녀노소(住民男女老少)가 눈물지으며 가로되 덕이 있고 어진이가 돌아가심을 슬퍼하더라. 배(配)는 김해김씨(金海金氏) 제인(齊仁)의 딸이며 경신(庚申) 五月 十日과 신묘(辛卯) 八月 二十八日은 김씨(金氏)의 생(生)하고 졸(卒)한 해다 묘(墓)는 사암리 송대산(紗岩里 松臺山) 임좌(壬坐)라 속배(續配)는 김령김씨(金寧金氏)니 부(父)는 형만(炯萬)이라 정묘 정월 十三日에 생하여 사남일녀(四男一女)를 두었으며 장(長)에 성익(成翼) 경익(璟翼) 한익(漢翼)은 전배출(前配出)이요. 계배(繼配)는 김령김씨 출은 군익(君翼)이며, 딸은 최복남(崔福男)에게 가다 손(孫) 계홍(啓烘) 용순(容洵)은 장자출(長子出)이요. 용수(鎔洙)는 차자출(次子出)이라 무릇 사람이 세상에 나매 행한 바의 자취가 비록 대소(大少)의 다름이 있으나 그 도는 하나라 공이 진실(眞實)하고 성근(誠勤)한 바탕으로 공사(公私)를 분명히 하여 마침내 한지방에 오는 세상에 안업(安業)을 이루웠으니 어두운 거리에 밝은 촛불이라 함이 그이를 두고 이름인가 그아들 한익(漢翼)이 또한 근직(謹勅)하여 선업(先業)을 이으니 가장(家狀)을 안고 그 재당형(再堂兄) 맹익(孟翼) 선익(善翼)을 같이하여 멀리 찾아와서 공의 행장(行狀)을 정하기에 감히 사양치 못하고 약간(畧干) 윤삭(潤削)을 더하여 위와같이 기록하노라. 西紀 一九八二年 壬戌年 六月 首陽 呉炳根 撰 全州 李亨九 譯 육성회장 조장훈 공적비 一九一六年 正月 十九日 사암리 가난한 선비가문의 조병기씨 세째 아드님으로 태어나시다 어려서부터 바른마음을 지니고 약한자 외로운자의 이웃이 되기를 결심 一九三八年 十一月 十五日 김씨 가문의 부인과 결혼님의 뜻을 펴시다 님은 교육입국의 중요성을 남달리 인식 교육사업에 물심으로 헌신 하시던중 一九六一年 五月 五日 사암국민학교를 이곳에 유치시키는데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시다 학교 육성회장 개입시에는 교사 증축및 학교 육성 발전에 열과 성을 다하시다 님은 투철한 국가관으로 새마을 운동과 농가 경제생활 안정 및 농협자립 기반조성에 혼신의 노력을 하시여 향리발전에도 그공이 지대하시다 님이 사랑하시던 슬하의 차녀에게는 님의 숭고한 호만을 유산으로 남기시고 一九七九年 六月 二十四日 향년 六十三세를 일기로 우리의 결을 영원히 떠나시다. 一九八○年 九月 二十六日 建立 추진위원 정판조 임종연 정하창 박찬문 이귀남 박종윤 이병길 정대수 임철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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